봄날 / 김수목
두 손을 감추고 벚나무 길을 걸어간다
두 발은 허공에서 자주 엇갈린다
박자 맞지 않은 슬픔 하나가
공중을 떠돌다 가슴속에 들어온다
누가 나의 감추어진 손을 끌어내 줄까
두 손 사이의 거리도 먼데
다음 생에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멋지게 살아내고 싶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알맞게 큰 키로
적당히 거절하며
적절하게 싫은 티도 내면서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징그러워지는 나이에
화장을 한다
엇나가는 두 발과 두 손과
무작위로 가끔씩 떨어지는 벚꽃 잎과
기억과 다음 날들이 만난다
봄날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쉼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입니다.
봄은 더욱 가까이 왔지만 춘분 새벽 눈이 내렸습니다. 춘분은 겨울도 봄도 아닌 어디쯤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김수목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봄날에는 무수한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도 땅도 바빠지는 때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품어보지만 사는 일은 늘 엇박자이기도 합니다.
김수목 시인은 어느 봄날 떨어지는 벚꽃잎 아래에서 생의 엇박자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봄날은 그런 엇박자와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모두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춘분 새벽에 내린 눈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봄과 눈이라는 엇박자도 결국 분주한 땅심을 이기지는 못하겠지요. 봄날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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