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축사 말미에 보이는 대한민국 31년 3월 1일은 서기로 1949년 3월 1일이다. 1919년이 대한민국 1년이니 대한민국 31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된(1948년 8월 15일) 이듬해인 1949년이 된다.
대한민국 연호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반포되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도 대한민국 연호는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제 1948년 9월 1일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승하는 의미로 ‘대한민국 30년 9월 1일(大韓民國三〇年九月一日)’로 표기하고 있다.
이 축사를 쓴 사람은 알 수 없으며, 내용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의암 손병희 선생을 대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으로 봐서 천도교 계열의 인사로 추정된다.
축사[祝辭]
참담하고 빛나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겨레는 애국의 의기와 함께 찬란하고 빛나는 삼천리 이 강산을 수행(守行)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악독한 왜놈의 발자취가 이 강산에 미쳐왔던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저주의 기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략질을 다하여 단군의 혈통을 끊으려고 하던 그들의 악행이야 말로 민족의 혼까지 가슴 쓰라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분하고도 원통하여 통곡하던 삼천만의 민족은 바야흐로 단기 4252년, 즉 서기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신령스럽고 영특하신 손병희 선생 이하 33인이라는 애국 의사를 비롯하여 금수강산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노소남녀를 불문하고 애국의 의기를 하늘 높이 펄펄 휘날리는 태극기를 양 손에 높이 들고 여기 쟁선(爭先)하여 목청이 찢어지는 듯이 ‘대한독립만세’를 무수하게도 부르짖으니 온 세상이 뒤집힐 듯하게도 천지가 진동하였습니다.
더욱이 피를 흘려 싸워가면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어 가면서 왜군의 노략질로 말미암아 희생자를 서로서로 등에 걸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왜군을 추격하여 용기 위에 용기를 가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또 불러 가면서 발악을 가하여 싸웠습니다.
지나간 독립운동을 깊이깊이 면고(面考)하여 애국의 정신을 더욱더욱 향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단군의 피를 타고난 이나라 새일꾼은 3월 1일 아.... 이 날을 잊지 말고 영원히 빛내는 동시에 선진국의 문화를 우리의 손으로 세계 고명(高名)되도록 많이 싸놓아야 할 것이다.
선조의 정신을 본받고 과학은 현대 과학을 충분히 소화하여 문화적 재산을 만드는 동시에 다 같이 일로매진하여 나가기를 이 자리에서 마지않습니다.
대한민국 31년 3월 1일